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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0세 노모를 두고 떠나는 일주일간의 여행, 그리고 남겨진 질문들

by mynews2328 2026. 6. 27.

제목: 90세 노모를 두고 떠나는 일주일간의 여행, 그리고 남겨진 질문들

가방을 싸며 문득 손이 멈췄습니다. 옷가지 몇 벌과 세면도구를 챙기는 이 지극히 평범한 행위가, 오늘따라 왜 이리도 무겁고 생경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곧 아흔을 넘기신 어머니를 집에 두고, 저는 일주일간의 여행을 떠납니다.

물론 어머니 곁이 완전히 비는 것은 아닙니다. 다행히 평소 오시던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계시고, 가사 일을 도와주시는 분도 계셔서 일상적인 돌봄에는 공백이 없습니다. 쌀독이 비지도 않을 것이고, 제때 따뜻한 식사도 드실 것이며, 약을 거르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물리적인 돌봄의 시스템은 완벽하게 짜여 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무겁고 뻐근합니다. 이번 여행을 떠나며 어머니께 솔직하게 “여행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저는 “엄마, 나 일 때문에 중요한 교육이 있어서 일주일 동안 다른 지역에 가야 해”라는 거짓말을 남겼습니다.

왜 솔직하지 못했을까?

어머니께 사실대로 말씀드리지 못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나이 , 육십이 넘서도 자식의 여행길을 걱정할 어머니의 마음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봅니다. “일 때문에 간다고 해야 어머니가 마음 편히 기다리실 테니까”라는 합리화도 보탭니다.

하지만 그 마음의 본질을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제 편안함을 위한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 나이 든 엄마 두고 놀러 가”라고 말할 때 찾아올 은근한 죄책감, 그리고 어머니의 쓸쓸한 눈빛을 마주할 용기가 제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일’이라는 공적인 명분을 방패 삼아, 자식으로서의 도의적 책임감에서 잠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축복 섞인 배웅을 받는 게 맞았을까요, 아니면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가면을 쓰는 게 나았을까요?

돌봄의 양과 질, 그리고 ‘자식’이라는 존재

현대 사회에서 노모를 모시는 일은 많은 부분 제도와 타인의 손길에 의지하게 됩니다. 요양보호사 제도가 없었다면, 저 역시 이런 일주일간의 탈출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능숙한 돌봄은 어쩌면 서툰 자식의 손길보다 더 안전하고 체계적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돌봄의 공백이 없다’는 사실이 ‘자식의 부재’까지 지워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90세의 노모에게 하루는 어떤 의미일까요? 어쩌면 창밖을 바라보며 자식의 발소리를 기다리는 것이 삶의 전부일지도 모르는 노년의 시간 속에서,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우리가 느끼는 체감 시간보다 훨씬 길고 아득할 것입니다. 교육을 간다는 자식의 뒷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일주일 동안 어떤 마음으로 적막한 방을 지키실지 감히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우리에게 ‘쉼’이란 무엇인가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복잡합니다. 그렇다면 노부모를 모시는 자식은 단 일주일의 개인적인 시간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자식이기 전에 저 또한 한 인간이기에,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돌봄의 터널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환기구’가 필요했습니다. 내가 먼저 지치고 무너지면, 결국 어머니를 돌보는 일조차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행은 제게 단순한 유흥이 아니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자식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생존형 충전’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는 발걸음에 묻은 미안함과 씁쓸함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돌봄을 지속하기 위한 이기심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선한 거짓말은 정말로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공항으로 향하는 길, 차창 밖을 보며 끊임없이 질문이 꼬리를 뭅니다. 정답은 없을 것입니다. 각자의 처지와 사정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갈 뿐이겠지요. 일주일 뒤,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거실에 앉아 계실 어머니를 향해 저는 어떤 얼굴을 지어야 할까요.

부디 이 일주일이 어머니에게는 지루하지 않은 평온한 시간이고, 제게는 다시 어머니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드릴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부모의 늙어감과 자식의 삶 그 사이에 서 있는 모든 이들의 밤이 오늘만큼은 조금 덜 무겁기를 기도합니다.